본문 바로가기
서양미술

아르카익 시기 조각과 고전

by 왕소라과자 2017. 2. 23.
반응형

기원전 490년경에 발달한 인물 조각의 한 양식으로, 아이기나 신전 동쪽의 박공에 표현된 일군의 설화적 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골격의 구조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함으로써 활동중인 인간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눈과 입 그리고 턱수염만은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니라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다. 빈사의 전사는 아르카익 시대 말기의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나 수메르로부터 기원을 갖는 커다란 전통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르카익 조각 말기로부터 10여년도 채 되지 않아 클래식 조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청동의 포세이돈상은 클래식 남성 조각상의 하나로 460년 전후의 작품이다. 


이 신상은 보이지 않는 적에게 벼락을 내리치는 순간이 활기찬 동작으로 묘사되있다. 무기는 폭력의 도구가 아니라 신적 권위의 상징이다. 이 멋진 청동상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포즈는 B.C 5세기의 위대한 조각가들이 대리석 작업보다 청동 작업을 왜 더 선호했는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 앞으로 내디딘 포세이돈의 왼쪽 다리가 체중을 지탱하고 있으며 오른쪽 다리는 신축성 있는 자주가 되어 균혀을ㄹ 유지하고 있다.


몸통에서 머리로 중량감을 유지하고 있는 운동감은 손이나 발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무기를 던지려고 하는 포세이돈 상에서 힘찬 운동감의 한 과정을 볼 수 있다. 현재에는 무기가 분실되었다고 한다.


콘트라포스토의 발전에 의해 조각가는 아무리 격렬한 움직임이라도 이젠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해답을 갖게 된 것이다. 아르카익 시대에도 운동감이나 격렬한 동작이 있는 조각작품을 찾을 수 있으나 아르카익 미술에서의 운동감은 자세나 몸짓에서 느껴지는 운동감이였으나 클래식 미술의 운동감은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건물

그리스 문화는 이후 서구 문명의 미술과 건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는데, 특히 고전 작품이 재발견되었던 르네상스 시대와 그리스붐을 일으켰던 18, 19세기에 성행했다. 그 후에도 그리스 양식은 널리 유행하여 오늘날 모든 박물관, 미술 아카데미, 대학에서 그리스 조각의 복제품이 자랑스럽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의 법원이나 은행같은 공공 건물의 외관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킨다. 


모든 그리스 건물들 가운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신전일 것이다. 그리스 건축가들은 흰 대리석의 파르테논 신전을 통해 아테네의 위대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아테네가 페르시아 침략을 물리친 후 시민들은 페리클레스의 지도하에 페르시아 침략군이 파괴한 것들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했다. 아테네의 성스러운 일반인아크로폴리스에 세워진 신전들이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인들에 의해서 불타버리고 약탈당했다. 이제 이 신전들은 대리석으로 다시 건립되었는데, 그전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페리클레스는 신전 설계를 건축가 익터노스에게 위임했으며 신상들의 제작과 신전의 장식은 조각가 페이디아노에게 위임했다. 파르테논 신전의 완벽한 미는 직선에서 벗어나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약간의 곡선형을 띠고 있는 데서 기안했다. 


원주가 약간 유선형을 ㄸ끼면서 위로 솟을수록 좁아지는 형태를 하고 있고, 엔타블라처와 계단형의 기단은 거의 아치형이다, 이렇듯 정교하게 직선을 곡면으로 바꾼 점이 중앙의 견고한 무게를 든든히 받쳐주고 위로 상승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회반죽을 사용하지 않고 세워진 파르테논은 화승 곡겨으로 중심부가 완전히 파괴된 1687년까지 거의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보존되었다. 


1801년 엘진 경이 조각품의 대부분을 때내어 대영박물관에 기증했을 때 시인 존 카이츠는 하늘을 바라보는 병든 독수리처럼 이 대리석 상들을 몇시간이나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리스 건축과 조각

그리스 인은 건축을 거대한 조각품으로 간주했고 똑같이 조화와 이상적 비례의 규칙에 맞추어 건립했다. 이 신전 앞에서 공공의 의식이 행해졌고, 신전에 부착된 정교한 조각품은 그 신전에서 숭배하는 신의 대한 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보통 조각이 부착된 부위는 윗부분의 삼각형 박공과 그 아래에 수평의 프리즈부분이었다.


이 고전기의 조각상들의 얼굴은 대개 무표정하여 엄격한 양식으로 불리운다.

여기서는 폭력적 사건이 묘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거의 표정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리피아의 제우스 신전에 있는 조각상에는 켄타우르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여성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 얼굴은 마치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하다.


건물의 박공에 조각된 인물상들은 붉은 색과 푸른 색으로 채색된 석조 배경 위에 돌출해 있는데, 완벽함과 조화에 집착한 그리스 인은 등돌린 조각상은 거의 만들지 않았다. 도리아 양식은 도라아식 사원의 표준적인 건축 구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통 그리스 본토에 분포되어 있다. 이오니아 양식은 소 아시아와 에게 해에 정착한 그리스 이주민 사이에 널리 퍼졌다. 아칸더스나무의 잎사귀를 본뜬 양식의 앞 무늬로 위블 장식한 코린트 양식은 훨씬 후에 발달했는데, 로마 시대까지 외부 건축에 널리 이용되지는 않았다. 


원주가 유선형으로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것을 배흘림 기둥이라고 부르는데, 조화에 대한 그리스 인의 집착이 이와 같은 곡선을 통해 딱딱함보다 부드러움을 추구하고 있다. 때때로 밋밋한 기둥대신 카리아티드라고 불리우는 여성 입상을 세우기도 했다.

반응형

'서양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헬레니즘 미술(2)  (0) 2017.02.25
헬레니즘 미술  (0) 2017.02.25
그리스 미술  (0) 2017.02.23
투탕카멘(Tutankhamen), 이집트의 미술양식  (0) 2017.02.22
이집트 미술  (0) 2017.02.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