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보기119 헬레니즘 미술 변호된 양식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제국의 건설은 그리스 미술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리스 미술은 이 제국이 건설됨에 따라 몇 개의 작은 도시 국가를 벗어나 세계의 절반에 해당되는 지역의 조형 언어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그리스 미술의 성격에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 후기 시대의 미술은 그리스 미술이라고 부르지 않고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이 동방의 나라에 건설한 제국의 이름을 따서 헬레니즘 미술 이라고 부른다. 이 제국의 풍요한 수도들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시리아의 안티오크, 그리고 소아시아의 페르기몬 등에서는 도리아 양식이나 이오니아식 건축의 우아함에서 벗어나 기원전 4세기 초에 고안된 코린트 양식이 유행했으며 일반적으로 건물 전체에 더 많은 화려한 장식.. 2017. 2. 25. 아르카익 시기 조각과 고전 기원전 490년경에 발달한 인물 조각의 한 양식으로, 아이기나 신전 동쪽의 박공에 표현된 일군의 설화적 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골격의 구조와 움직임의 상관관계를 잘 표현함으로써 활동중인 인간의 형태가 자유자재로 표현되어 있다. 다만 눈과 입 그리고 턱수염만은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니라 전통적인 규칙을 따르고 있다. 빈사의 전사는 아르카익 시대 말기의 그리스 미술이 이집트나 수메르로부터 기원을 갖는 커다란 전통과의 관계를 벗어나려는 노력, 즉 권력과 영원으로부터 율동과 자연스러움의 표현으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아르카익 조각 말기로부터 10여년도 채 되지 않아 클래식 조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청동의 포세이돈상은 클래식 남성 조각상의 하나로 460년 전후의 작품이다. 이 신상은 .. 2017. 2. 23. 그리스 미술 미케네인들은 멸망 후에 시작된 그리스 문명은 출발이 그다지 영관스럽지는 못했다. 약 기원전 1000년 무렵에 여러가지 그리스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에게 해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주된 민족은 주로 그리스 본토에서 살았던 도리아인(Dorians)과 많은 섬들 및 소아시아 서해안 지역에서 살았던 이오니아인(Ionians)이였다. 그들은 넓게 흩어진 소규모의 여러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체가 모여 마침내 폴리스로 발전 하였다. 최초의 공동체는 가난하고 미개하였으나, 점차적으로 강성해진 폴리스들은 이웃 국가들과 폭넓은 교역을 시작했으며 이집트와 근동의 민족 및 문화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풍부하고 완성된 예술형식을 갖춘, 유서 깊고 개화된 그리고 뛰어난 이들의 문명의 깊은 감명을 받아 .. 2017. 2. 23. 투탕카멘(Tutankhamen), 이집트의 미술양식 투탕카멘 19세기 죽은 투탕카멘 왕은 생전에는 별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였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3000년이 지난 지금, 그는 가장 널리 알려진 파라오가 되었다. 그의 무덤은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유일한 왕묘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오래 전부터 그의 왕묘가 존재하리라 믿고 6년 동안 왕의 계곡을 뒤졌는데 왕묘의 입구에서 2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2번이나 탐색하기도 했다. 1922년 마침내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투탕카멘 왕묘는 3000년의 먼지 속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카터가 어둠 속에서 성냥불을 그었을 때 그의 주위는 온통 황금 더미로 둘러 싸여 있었다. 파라오의 장례 절타에 대한 지식은 모두 투탕카멘 무덤을 통해 얻어진 것이다. 무덤속의 부장품은 과일 바구니와 빛바랜 꽃다발.. 2017. 2. 22. 이전 1 ··· 25 26 27 28 29 3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