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미술의 업적 중에서도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경이로운 업적에 필적하는 것은 바로 고딕 양식의 대성당들이었다. 실상 이 석조 성당들은 기술적인 도전이라는 면에서 볼 때 고전 건축을 능가한다. 이 새로운 미술양식은 1140년대 파리 근교의 생 드니 왕립수도원의 답력있고 정력적인 지도자 쉬제르라는 인물의 천부적인 재능에 의해 시작되어, 1200~1500녕 사이 건축가들은 세계 건축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이 솟구친 내부를 가진 이 복잡한 구조물들을 건설했다. 고딕양식의 대성당을 건설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늑골 궁륭과 부연 부벽이라는 외부 버팀목의 발명 덕분이였다. 이러한 구조물 덕분에 건축가들은 작은 창문만이 달린 육중한 벽 대신, 커다란 스테인드 글라스를 설치한창을 통해 밝은 빛이 들어와 내부를 환하게 밝힐 수 있었다. 고딕 성당을 보면 중세를 암흑 시대라 부르는 것이 전혀 걸맞지 않음을 느낄 수 있다.
고딕 성당의 발전사를 보면 계속해서 빛의 유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알 수 있는데, 결국 벽면은 종교적인 교훈을 담은 커다란 채색 유리로 조립된 창살과 같은 것이 되었다. 고딕 성당의 이러한 격자 문양과 더불어 위로 상승하려는 듯한 수직성 또한 고딕의 특딩을 이루고 있다. 건축가들은 첨두 아치를 사용하여 높이를 실제로 높여왔을 뿐 아니라 보기에도 더욱 높아 보이는 효과를 가져 왔다. 건축가들은 본당의 높이를 서로 겨루었는데 아미앵 성당의 본당 높이가 약44m로 최고를 차지한다.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본당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자주 있었지만 그때마다 신자들은 지치지 않고 재건립을 시도하였다.
고딕 성당은 그곳에 사는 시민들의 긍지를 높이는 상징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침략자들이 자행할 수 있는 최악의 공격은 바로 이 성당을 누너 뜨리는 것이었다. 신분계층을 초월하여 모든 시민이 성당 건립에 참여할 정도로 이 건물에 대한 헌신은 놀라운 것이였다. 귀족과 귀부인들이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을 마차로 싷러 날랐고 푸주간 주인과 미장이들이 함께 땅을 흘렸던 것이다. 이러한 공사는 너무나 방대하여 여러 세대에 결쳐 이루어 졌는데 그 때문에 어떤 건물에서는 여러양식이 연속적으로 뒤섞여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건축예술
중세의 신학자들은 교회의 아름다움이 신자들에게 믿음과 명상의 정신을 불어 넣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교회는 단지 모여서 예배를 보는 방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원의 길을 설교한고 있는 수많은 장식물로 치장된 성서였다. 고딕 성당에서 주로 사용된 장식물이란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타피스트리를 들 수 있다.
조각
성당의 외부벽에는 성경의 내용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샤르트르 대성당의 초기 고딕 조각과 랭스 성당의 전성기 고딕 조각상을 비교해 보면 중세 미술의 변천을 알 수 있다. 1140~1150년 사이에 만들어진 샤르트르 대성당의 서쪽문에는 구약성서 속의 왕과 여와들을 조각한 문설주 조각상들이 있는데. 그들은 좁은 기둥의 몸체에 맞추기 위해 길게 늘어나 있다. 옷의 선도 몸체와 마찬가지로 가늘고 직선적이어서 사실적인 흔적은 거의 없으며, 로마네스크조각의 선정적이고 뒤틀어진 동작과는 달리 침착하고 인자한 표정이다.
그러나 1225~1290년 사이에 제작된 랭스 대성당의 서쪽 정문 문설주 조각은 거의 건축적인 배경에서 독립하여 기둥 아래의 받침대 위에 서 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저서가 재발견된 이후로 중세 철학은 더 이상 육체를 사악한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고 영혼의 덮개로 간주했다. 따라서 장인들도 역시 육체를 차츰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묘사하게 되었다.
수태고지에서는 마리아가 미소를 짓는 천사로부터 수태 소식을 듣고 수줍어하는 젊고 날씬한 처녀로 묘사되어 있으며, 방문에서는 잉태한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잉태한 친척 언니 엘리사벳의 방문을 받고 서로의 잉태를 기뻐하고 있다. 동정녀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입상은 한쪽 다리에 무게를 싣고 서 있고 상체를 서로로를 향해 돌리고 있다. 표정이 풍부한 나이 든 엘리사벳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있고 옷주름도 전보다 훨씬 풍성하게 표현되어 있다. 수태고지의 천사와 마리아는 각각 다른 조각가의 작품이며 , 방문의 조각보다 10여년 후에 만들어 졌다고 추측된다.
스테인드 글라스
샤르트르 대성당은 중세 정신의 진수이다. 샤를마뉴의 손자인 샤를르 드 발드가 성모를 경배하기 위해 건립한 이 대성당은 여러 가지 면에서 걸작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안에서 설치된 스테인드 글라스는 중세의 스테인드 글라스 중에서 손상되지 않고 가장 잘 보존된 것인데 전 면적이 약 869m에 이른다. 성인의 열대기나 성경 속에 이야기를 삽화로 그리는 프랑스의 전통 공예를 생각해 보면 이 스테인드 글라스는 거대한 규모의 채색 사본이라 부를 만 하다. 영롱한 스테인드 글라스의 색채는 녹아 끓는 액체 유리 속에 구리나 망간, 철 등ㅇ,;금속 산화물을 적당히 섞어 완전한 색상을 만들어내는 고도의 기술에 의해 가능했다.
타피스트리
중세의 직조인들은 당시의 일상 생활을 세밀하게 묘사한 고도의 섬세한 타피스트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양모와 실크가 배합된 걸개들이 성이나 교회의 차가운 석조 벽을 장식했다. 베틀 뒤에는 커다란 그림을 놓고서 직조해 나갈 때마다 디자인을 모방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유니콘에 대한 전설을 담은 일곱개의 타피스트리의 연작이다. 민간전설에 의하면 이 상상의 동물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숲속의 처녀를 미끼로 놓는 것 뿐이라 한다. 도판의 장면은 처녀를 믿고 무릎에 잠들었던 유니콘이 깨어나 우리에 갇혔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사로잡힌 유니콘은 석류 나무 사슬로 묶이는데 이것은 한 열매 속에 수많은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에 풍요다산과 교회의 번영을 상징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유니콘은 궁정식 연애의 단골 테마로 쓰였다. 그러나 이 타피스트리에 보이는 꼬리를 치켜 올린 채 앉아 있는 유니콘은 부활한 예수를 상징한다. 이 유니콘의 매력은 그 형상이 시각적으로 아주 모호하다는 점에도 있다. 유니콘 주위는 여러 가지 색깔의 화초들이 흩어져 있는 짙은 초록빛이다. 이 화초들은 거의 이차원적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흐르는 듯한 아름다운 옆모습의 유니콘 역시 이차원의 무늬처럼 보인다. 이런식으로 볼 때 유니콘은 뒷다리로 곧투서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우리가 그를 삼차원적인 형상으로 해석한다면 그는 엎드려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울타리의 마름모꼴은 유니콘을 이렇게 지각한 것을 확증을 준다. 도안자나 삼차원의 고려보다 이차원의 고려를 더 중시했다는 점에서 고딕 시기를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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