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외에 로마가 세계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아마도 건축과 공학 분야일 것이다. 로마의 건축가들은 아치와 궁륭, 돔을 개발한 것 이외에도 콘크리트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와 같은 혁신적인 건축 기술로 인해 로마인들은 최초로 받침대 없이 거대한 내부 공강을 덮을 수 있게 되었다. 로마인들은 전리품으로 인해 풍족한 부를 누렸다. 네로의 궁전인 황금의 집은 현관만 해도 몇 마일이나 될 정도로 고대 세계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주거지였다. 향연실에서는 천정에서 향수가 뿜어져 내렸고 돔 천장은 개폐식이어서 열었을 때에는 손님들이 별자리를 볼 수 있었다.
로마인인들은 목욕을 즐겼는데 거대한 욕탕을 좋아했다. 거대한 카라칼라의 대욕탕은 다양한 온도의 탕 속에서 1,600명의 군중이 동시에 목욕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 노예들이 불을 지펴 덮힌 물을 정교한 수도 시설을 통해 욕탕에 공급했고, 한증탕이나 체력연마실도 있었다.
로마조각
로마인들은 당시 유행했던 헬레니즘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스 조각들을 대향으로 복제하긴 했으나. 점차 자신들의 특징적인 양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일반적으로 로마 조각들은 돔더 실제적이다. 로마인들은 집에 밀랍으로 만든 조상의 데드 마스크를 보관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죽은 자의 얼굴에서 직접 주물을 뜨기 때문에 매우 사실적이었는데 이와 같은 전통이 로마의 조각에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전통에서는 예외적으로 로마에서 수천 마일 떨어진 지방관청하는 황제, 정치인, 장군들의 신과 같은 위용을 한 흉상이 대량 복제, 전시되어 있다. 흫미있는 것은 왕권교체의 주요 수단으로 암살이 사용되었던 로마 제국 쇠망기의 초상 조각은 다시 직설적이고 실제적인 표현 방식으로 되돌아 갔다는 사실이다. 전혀 미화되지 않는 카라칼라의 조상은 잔인한 독재자의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고 필립스 아라부스는 의심많은 폭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로마조각의 또 다른 주요 형태는 사서적인 부조 조각이다. 개선문의 아치에는 군대의 정복 전쟁을 묘사한 조각이 새겨져 있으며, 그 밑으로 개선군이 사슬에 굮인 포로들을 이끌고 행진하였다. 그 중 가장 야심적인 작품이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주이다. 약 200m 높이의 기둥에 부조가 나선형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적어도 150개 이상의 대량학살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콜로세움
아치와 궁륭에서 쌓은 공학적 경험과 콘크리트의 사용에서 쌓은 실제적 경험으로 로마인들은 그리스인들이 꿈도 꿀 수 없는 규모의 거대한 건물을 창조하는 것을 가능케 하였다. 이러한 기법들은 그리스 극장까지도 변형시키게 하였다. 그리스 극장들은 언덕 사면에 축조되었다. 따라서 그것들은 자유롭고 서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이러한 기법들을 응용한 로마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콜로세움 이라고 알려진거대한 원형 경기장일 것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로마 인구의 대부분은 궁핍한 생활을 면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황제들은 대규모의 공공 오락을 통해 그들의 불평을 무마하려 했다.
서기 80년에 문을 연 콜로세움은 5만명 관객이 3천명이 넘는 배우들이 공연할 수 있는 규모의 무대를 경기장 전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가장인기 있었던 것은 검투사들의 결투였다. 어떤 검투사는 방패와 투구, 창으로 무장한 반면, 어떤 이들은 그물과 삼지창만을 휴대하였다, 검투 선수들은 가죽장갑을 끼고 경기했지만 ㅡ들의 주먹은 쉣덩이를 부스러 뜨릴 정도로 단단했다. 열정적인 결투장면을 연출하다가 검투사가 죽는 경우도 허다했다. 노예들은 채찍을 후둘러 달아나는 야수와 검투사들을 다시 싸움터로 몰아넣고곤 했다. 관객들이 사인적인 광란에 휩싸여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면, 하루에도 40명이 넘는 검투사가 죽어갔으며, 하루 행사의 진행 동안 수천 구가 넘는 사람과 동무ㄹ의 시체가 쇠갈퀴로 끌려 나갔다. 막간극은 범죄자들의 처형이였는데 인간과 야수의 대결이었다. 지하 우리에서 수백마리의 굶주린 사자때가 원시적인 승강기로 실려와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기독교 신자와 노예들을 공격했다.
간중들은 인간과 곰의 대결도 좋아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승전을 축하하고자 11,000마리의 사자, 표범, 타조, 영양을 한꺼번에 희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짐승드릐 악취를 막기 위해 노예들이 귀한 손님에게 향수를 뿌려댓고 경기장 모리위에서 붉은색 가루를 뿌려 핏자국을 가리기도 했다. 콜로세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관객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먀우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오늘날 스타디움의 디자인에도 응용되고 있다. 관객들은 수십 개의 통로 중 하나를 통해 들어가도록 배치된 좌석의 번호를 배당받아 비탈길과 복도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관객의 유동이 용이하다.
약50m 높이의 건물에 그리스 건축에서 사용되었던 세가지 양식의 전부 응용하고 있는데 1층은 도리아식의 변형으로, 2층은 이오니아식이고, 3층과 4층은 코린트 양식의 반원주로 이루어져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대표적 디자인의 소산이다. 수직의 원주와 수평의 아치를 조화롭게 통합시켜서 거대한 구조의 정문을 칙숙하게 보이도록 했다. 로마식 구조와 그리스 기둥양식들과의 결합은 그 이후의 건축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첬다. 불행히도 훗날 로마의 부호 바베리니 가에서 경기장의 대리석 외장재를 떼네어 사택을 장식하는 바람에 오늘날에는 대리석 장식을 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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