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는 기원전 8세기에 테베레 강변의 몇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 소규모의 시에서 시작되었으나,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에트루리아문명을 멸망시키고 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공화정치 형태를 확립하고 거대한 제국의 중심지로서 급속히 성장했다.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영국에서부터 이집트, 스페인, 남부 러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하였다. 이와 같은 방대함으로 로마제국은 그리스와 같은 구시대의 문화를 흡수한 그레코 로만이라는 복합적 문활 형태를 북부 아프리카와 서부 유럽에 전달하는 역활을 하였다.
따라서 로마 미술은 그 다음에 오는 모든 시대에 예술적인 발판을 제공하였다. 이 거대한 제국은 두 세기가 훨씬 넘도록 번성하여 지배력과 평화와 번영을 구가하였지만 서기 330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김으로써 영광스런 로마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기원전 3세기경 오랬동안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남부 이탈리아와 시찰리아 섬에서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교류가 시작되었는데, 처음에 로마인은 그리스 문화에 압도당했다.
그리스적 취미는 로마인에게 절대적인 호응을 받아 그리스의 청동과 대리석 상이 갤리선을 통해 들여와 로마의 공화당 광장에 진열괴었다. 네로황제는 델피 신전에서만 500여게의 청동상을 가져왔고 더 이상 진품이 없어지자 장인들을 시켜 복제품을 생산하도록 하였다. 비록 로마인들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그리스인들을 지배하긴 했지만 그들은 그리스인들의 예술과 문화의 우수성에 굴복하였다.
로마의 시인 호에스는 이러한 현상을 무례한 정복자가 오히려 그리스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고 비꼬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술뿐만 아니라 시, 수사학, 철학 등에도 매료되어 많은 그리스 지식인들과 장인들, 교사, 학자, 사상가, 조각가, 화가 등을 고용하였다. 엄청나게 많은 조각이 로마제국 시기에 제작되었었는데 대부분은 그리스 조각상의 모사품들이었다.
그러나 이후의 로마는 그리스보다 앞서 있던 군사적 조직력과 정치적인 효율성을 바탕으로 그리스 문화의 절대적 영향력에서 차차 벗어나 독자덕인 예술과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역사상 최대의 제국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조직력과 능률적인 행정력을 더해 나갔다. 로마 예술은 고전기 그리스 예술보다 지적이고 이상적인 면은 덜하였지만 보다 현실적이고 기능적이었다. 그리스인들이 혁신적인 면에서 탁원했다면, 로마인의 장기는 행정 능력에 있었다.
로마 군대가 지나간 곳 어디에서나 도로, 다리, 상하수도, 수로나 법률같은 실질적이며 실용적인 문화적 해택의 영향을 찾아 볼 수 있다.
로물루스와 레무스
미의 여신 베누스와 트로이왕의 형제인 안키세스 사이에서 타어난 아이네아스는 트로이의 멸망을 결정한 신들의 명에 따라 트로이를 떠나 아들 아스카니우스와 추종자들을 이끌고 신들이 약속한 라틴국에 도착하여 라틴국을 점령한 뒤 라틴국의 공주 라비니아와 결혼하게 되었다.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는 라틴지역에 알비롱가의 도시를 건설하고 그 후예들이 400년간 다스리게 되었다.
알바롱가 최후의 군주 누미토르의 딸 레아실비아는 전쟁의 신 마르스와 결혼하여 그 사이에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났다. 형 누마미토르로부터 권력을 빼앗은 황폭한 군주 아물리우스는 두 아기들을 테베레 강에 던져 죽이도록 했으나 아버지 마르스의 보호아래 테베르강의 물결은 아이들을 안전하게 팔라티노 언덕까지 몰고 같으며 이때 나타난 암늑대가 젖을 먹여 보호해 주었고 나중에 우연히 쌍둥이 형제를 발견한 목동에 의해 키워졌다.
탄생의 비밀을 알게된 두 형제는 아물리우스를 죽이고 그들의 할아버지 누마토르를 다시 왕으로 복위시켰다. 누미토르는 그들 형제가 무사히 돌아온 것에 삼사하여, 기원전 753년 4월 21일 팔라티노 언덕에 새로운 도시를 새웠다. 이 팔라티노 언덕은 암늑대가 그들을 돌본 곳이다. 로물루스는 새도시의 이름을 로마라고 정하고 초대 왕이 되어 로마 건국의 시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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