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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영국의 바로크

by 왕소라과자 2017.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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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은 혁명의 세기로서 찰스 1세는 국왕이었음에도 반역죄로 처형당했고 크롬웰이 교회 미술을 금지했으며 의회화들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였다. 17세기 영국 문학은 세익스피어, 밀턴에의해 전성기를 맞았지만 미술은 훨씬 그에 미치지 못했다. 청교도 교회에서 종교 미술은 금지되어 있었고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은 영국인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미술은 거의 초상화에 국한되어 있었다. 과거 영국의 우수한 초상화가 홀바인과 판다이크의 예에서 보듯이 거의가 외국인들이었다. 그러나 17세기에는 최초로 영국 출신의 3명의 중요한 화가가 배출되었는데 호가드, 게인스버러, 레이놀즈가 그들이다.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rth)

나는 그림의 주제를 극작가처럼 다루려고 노력한다. 나의 회화는 나의 무대이다. 라고 화가이자 판화가인 윌리엄 호가드는 말했다. 동시대의 풍자작가인 필딩과 스위프트의 영향을 받은 호가드는 풍자화 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데 이것은 당시 풍속을 조소하는 일련의 일화와 같은 그림들을 말한다. 대중들은 이와 같은 풍자화 들을 담은 호가드의 판화를 대량으로 구입하였으며 이러한 작품들로 인해 호가드는 영국 화가로서는 최초로 다른 나라에까지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호사드는 대륙의 화가들을 숭배하고 자국의 미술에 열등감을 갖고 있는 영국의 문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평생 분투하였다. 그는 거장들의 그림을 이해ㅏ지도 못하면서 무조건 숭배하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비판했고 유행을 쫒는 초상화가들을 경멸하였다. 그는 초상화에서 부조화가 오히려 인물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고 믿었기 때문에 인물을 미화시키기를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그에게 초상화를 주문하는 사람이 줄어 들었기 때문에 대신, 그는 자신의 고유한 장르인 풍자 판화를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호가드의 소년 시절에 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가 빛 때문에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이 경험은 화가의 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탕자의 행로 라는 그의 판화를 보면 빛진 이들을 가두는 감옥과 정신병자들을 수감하는 베들램 병원의 비참한 상황같은 인생의 어두운 부분을 극명히 묘사하고 있다. 호가드는 또한 최초의 정치 풍자 만화가로 활약했다. 그는 다양한 사회 계층을 풍자하였는데 그의 판화에서 게으른 귀족이나 술취한 도시 노동자들, 부패한 정치가들 모두 똑같은 인간 쓰레기일 뿐이었다.


호가드의 결혼 풍속도를 보면 신흥 부유층의 신부와 방탕한 귀족 자제의 중매 결혼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결혼에서 전자는 사회적 지위 상승을, 후자는 탕진한 재산을 만회하려는 셰산이 숨어 있다. 이것은 호가드의 친구인 풍자작가 헨리 필딩의 탐 존스 에 있는 결혼으로 그녀의 재산을 빼앗자 는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타협하지 않는 정직함과 유머러스함이 호가드 미술의 특징으로, 그는 라파엘로 같은 그림의 작가가 되느니 범죄자의 행로를 그리러 돌아다니겠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결혼 풍속도

호가드는 영국사회를 조소한 풍자화가로 유명하다. 호가드는 이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기 위하여 수많은 소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아침 장면 을 보면 신부는 돈많은 아버지가 지참금으로 산 멋진 신랑을 힐끔 힐끔  쳐다보고 있는 반면, 방탕한 귀족 출신의 신랑은 지치고 어두운 표정이다. 그의 손목시계는 12시가 넘었는데 마루 위에 어지러진 카드와 뒤집혀진 의자, 부러진 칼을 보면 밤새 파티를 벌이느라 잠을 자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귀족의 호주머니에 있는 레이스 모자는 혼의 정사를 암시하고 있다.


게인즈버러(Gainsborough)

게인츠버러는 판다이크를 숭배했다. 그는 판 다이크로부터 인물이 위풍당당하게 보이도록 비례를 늘이는 법과 생동감 있게 보이기 위해 매력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포즈를 연출하는 법을 배웠다. 게인즈버러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사랑스러운 초상화로 영국 미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재미로 풍경을 그렸는데 자신의 화실에 스폰지와 이끼로 된 풍경 미니어처를 만들어 두었을 정도였다. 당시에 풍경화는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게인즈버러는 초상화의 배경에 풍경을 집어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리처드 브린슬리 셰리던부인 초상화의 인물은 소박한 복장을 하고 시골풍의 전원을 배경으로 바위에 앉아 있다. 풍경과 인물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포물선을 그리며 관객의 시선을 뒤쪽으로 이끄는 구실을 하고 있는 반면 가운데에 있는 나무와 구름, 관목, 언덕, 치마의 둥근 곡선은 관객의 시선을 다시 인물의 얼굴로 집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시선을 움직이게 하는 바로크적인 구성은 타원형의 얼굴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전원풍인 게인즈버러의 작품은 19세기에 컨스터블 같은 화가가 풍경을 단독 주제로 삼을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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