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전성기 르네상스를 빝냈던 3명의 중요 인물중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있었던 인물은 바로 라파엘로였다. 다른 두 사람이 널리 존경받으며, 그들의 작품은 찬탄의 대상이였던 반면, 라파엘로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동시대인이면서 최초의 미술사를 기술했던 바사리는 라파엘로의 성품은 너무나 부드럽고 사랑스어워서 짐승들 까지도 그를 사랑했다 라고 쓰고 있다.
그에게 처음으로 회화의 기초를 가르틴 그의 아버지는 평범한 재능을 지는 화가였다. 그러나 라파엘로는 17살에 이미 한사람의 독립적인 화가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26살에는 교황의 부름을 받아 바티칸을 장식하는 ㅇ미무를 맡게 되었으며, 50여 명이 넘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프레스코 화를 완성시켰다. 이 떄가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완성했던 시기였는데,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의 기법은 전부 나에게서 배운것이다, 라고 술회했다고 한다.
부유하고 훤칠한 외모의 라파엘로는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교황의 궁전에서 총아로 군림하였다. 특히 귀부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어 바사리는 그는 매우 호색가여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밀회를 즐겼다. 라고 쓸 정도였다. 그가 한밤의 밀회로 열병을 얻어 37살의 나이로 요절했을때 온 궁정이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라파에로의 예술은 전성기 르네상스의 특징을 모두 집약해 놓은 것이다. 레오나르도에게서는 피라미드 구도와 빛 그림자를 이용하여 인물의 조형성을 강조하는 기법을 배웠고, 미켈란젤로부터는 우람하고 역동적인 인물과 균형의 동작을 배워 자신의 그림 속에 응용하고 있다.
아테네 학당
신 피에트로 대성당의 바싷히카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물의 궁륭 아래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이 모여 있다. 화면중앙의 건물 입구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걸어나오며 대화를 하고 있다. 플라톤은 하늘을 가르키며 만물지식의 근원인 이데아를 이야기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지를 가리키며 변함없는 자연적 진리를 설파하는 듯하다. 맨 앞편에서 홀로 턱을 괴고 앉아 있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끊임없는 변화를 대해 사색하고 있으며, 계단에 비스듬히 걸터앉은 이는 디오게네스이다. 사람들에게 둘려싸여 흑판에 몸을 기울인 자는 유클리드이며, 그 옆에 지구와 천구를 든 이는 각각 프톨레미와 조로아스터이다. 라파엘로는 고대 철학자들의 얼굴을 모델로 형상화하였는데, 예를 들어 덥수룩한 수염의 플라톤은 레오나르도의 얼굴이며, 다소 외로워보이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이다. 유클리드는 보라만테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그림의 오른쪽 구석에는 화가의 자화상도 그려넣었다.
타치아노
60여 년 동안 베네치아 미술계의 재왕으로 군림했던 티치아노는 베네치아 출신의 화가들이 대개 그렇듯이 강한 색채를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사용했다. 처음 그는 캔버스 전체를 따스한 느낌이 나는 붉은 색조로 칠한 후 인물과 배경을 원색으로 채색하고 나서 그 위에 약을 30~40겹 겹쳐 발라 색조의 강함을 완화시켰다. 이런 정성스러운 방법을 통해 그는 번쩍이는 금속이나 비단의 광택, 머리카락과 살갗을 마치 실물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그는 또한 나무판을 버리고 헝겊으로 만든 캔버스 위에 유화를 그린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530년 그의 부인이 사망한 후부터 티치아노의 그림은 우두워져서 거의 단색조에 가깝게 된다. 80대 후반까지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였던 티치아노는 시력이 나빠짐에 따라 화필도 더욱 거칠어지고, 마침내 나이프를 사용하여 폭이 넓고 두껍게 물감을 칠하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의 제자의 증언에 의하면 티치아노는 붓보다 손가락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릴 떄가 더 많았다고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
회화와 조각에서 조화로운 균형이 중요한 요소였던 것처럼, 건축에서도 고대 로마의 장엄함과 화려함이 부활한다. 르네상스 시기에 가장 유명한 건축가는 알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브라만테, 팔라디오이다. 문팔가이자 화가, 조각가, 건축가였던 알베르티는 회화, 조각, 건축의 규범에 관하여 글을 썻던 르네상스 시기의 중요한 이론가였다. 그는 예술의 종교적 목적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예술가들에게 시본 교양으로서 역사, 시, 수학과 같은 학문을 공부할 것을 권장했다. 알베르티는 처름으로 원근법에 대해 체계적인 인내를 담은 책을 썻고, 조각가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상적인 인체의 비례에 대한 이론을 확립했다.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한 또 하나의 르네상스 인으로는 부르넬레스키가 있다. 그는 금 세공가, 조각가, 수학자, 시계탑 설계자, 건축가로서 활약했으나, 무엇보다도 근대 건축 공학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수학적인 원근법의 첫 발견자일 뿐ㅁ만 아니라 중세의 바실리카 양식을 대신한 중앙 중심 설계의 교회로 유명했다. 그가 설계하고 건설을 지휘한 피렌체 대성당의 돔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이어 여렵번째 기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이중 돔의 서로를 받쳐주도록 하였으며, 꼭대기에는 채광창을 만들어 전체를 지탱하도록 설계하였다. 파치 예배당에서 그는 건물의 외관에 고전적인 모티프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의 디자인은 로마적인 형태의 부활이며, 동시에 비례와 균형을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기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1502년 브라만테는 성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템피에토를 세웠다. 비록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이 건물은 중앙 중심 설계 교회의 완벽한 전형이다. 이것은 질서와 단순함, 조화로운 비례를 중시하는 르네상스의 이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작은 주택과 궁전의 설계로 유명한 팔라디오는 그의 건축이론 서적인 건축에 대한 네권의 책들 로 후세에 큰 영향을 끼친 건축가이다. 토마스 제퍼슨과 크리스토퍼 렌과 같은 근대 신고전주의 건축가들이나 런던의 세인트 폴 성당을 지은 건축가들은 팔라디오의 책을 지침서로 사용하였다. 그가 설계한 빌라 로톤타를 보면 이오니아식 열주로 장식된 현관, 판테온과 같은 평평한 돔, 중앙의 원형 홀을 둘러싼 대칭적인 방들의 배치에서 그리스적인 건축 구조가 도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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